수원 삼성 블루윙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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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K리그 소속 프로 축구단. 2021년 기준으로 1부리그인 K리그1 소속 클럽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린 축구 클럽'''이자[11] , FA컵 '''최다 우승팀'''으로[12] , 과거 막대한 자금력과 체계적인 시스템 구축으로 ''''축구수도 수원, 전통의 명가''''라는 수식어가 붙는 구단이다. 더불어 K리그에서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클럽 중 하나이기도 하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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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당시 KBS 뉴스 영상
1995년 12월, 삼성전자를 모기업으로 삼성전자 본사가 위치한 경기도 수원시[13] 를 연고지로 하여 창단하면서 이듬해인 1996년부터 K리그에 참가했다.
리그 순위에서 언제나 상위권에 위치했던 구단이며, 관중 동원도 창단 이래 늘 리그 최상위권을 다투는, K리그에서 최초로 슈퍼 클럽의 모습을 제시했던 클럽이다. 창단 당시부터 세계 축구계의 중심으로 가기 위한 목표를 삼고 모기업의 막강한 자금력과 1등 주의에 기반한 모기업 삼성전자의 성향을 바탕으로 우수한 선수들을 영입해 리그에 참가했다. 결과적으로 첫 해 리그와 FA컵에서 준우승을 기록했고, 창단 3년만에 리그 우승과 리그 2연패 + 전관왕, 2001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까지 하는데 불과 5년 남짓의 시간만이 걸렸을 정도로 창단부터 남다른 강팀의 면모를 보였다.
1998-99년의 수원은 리그 역사상 최강팀 중 하나로, 여기에 견줄 팀은 1997년 부산 대우 로얄즈[14] 와 2001-03 성남 일화 천마[15] 뿐이다.
서포터즈는 그랑블루와 2009년 분리된 하이랜드 에스떼로 양분되어 있었으나, 2012년 5월 20일 울산 현대와의 홈 경기부터 '''프렌테 트리콜로'''라는 이름으로 단일화되었다.
부유한 모기업을 두고 창단 직후부터 좋은 성적을 내고 리그에서 손꼽히는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곤 했기에 곧잘 K리그의 '''첼시 FC'''[16] , '''레알 수원'''같은 별명으로 불렸다. 법인화 이전 당시 차범근 감독이 선수 영입에 필요한 자금을 얻으려고 하면 바로 모기업 수뇌부와 다이렉트로 대면해 필요한 액수를 말하면 그냥 줬다고 한다. 2009년 법인화 이후에는 당시 경제 악화와 더불어 이전만큼 돈을 쓰지 못했다고 하는데 법인화 이후부터 제일기획 이관 이전까지 삼성전자의 지원금은 연간 약 300억원 수준이었다. 백지훈은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당시 수원의 승리 수당이 타팀에 비해 5배나 된다고 언급해 당시 수원의 자금력이 어느정도였는지 간접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다. #
하지만 서정원 체제에 들어선 이후부터는 지출을 줄이고 자생에 무게를 두기 시작하면서 이는 옛말이 되었다. 정확하게는 윤성효 전 감독 시절 말기부터 운영비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2012-14시즌 3년간 꾸준히 연간 운영비가 줄어들었으며, 2015시즌에는 2014년의 250억보다 줄어든 200억의 운영비로 팀을 꾸려 나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기사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연봉 공개 추진과 맞물려 삼성전자 측에서 "투자대비 효율이 너무 떨어진다."며 운영비를 삭감하기 시작한 것이 컸다. 관련 기사
물론 삼성은 삼성인 만큼 선수단 연봉이나 구단 인프라는 좋은 편에 속하지만 과거처럼 현금을 쏟아부어 거물급 스타를 대거 영입하는 일은 비교적 줄어들 듯 하다.[17] 그리고 이 기사에 따르면 '''‘모기업이 주는 예산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우승하는 구단’에서 ‘스스로 돈을 벌어 매출을 발생시키고 성적도 적절히 내는 구단’으로 바뀌려고 하는 중'''이라고 한다. 물론 국내 프로스포츠 여건상 불가능에 가까운 수준.
2008년, 구단의 엠블럼에 리그 참가 연도였던 '''1996'''을 창단 연도인 '''1995'''로 바꾸고 하단에 영문으로 '''SAMSUNG F.C.'''이라 적혀 있던 것을 '''SUWON'''으로 바꾸면서 축구 수도를 수원으로 정하고 지역 연고를 확고히 하려는 의지를 보여줬다.
2013년까지 서울 삼성 썬더스 농구단와 함께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를 대표하는 기업 구단으로서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대로 구단주를 맡았다. 한때 '''삼성전자 축구단'''이라는 법인명을 놓고 수원 구단을 비하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18] . 그런데 이제는 프로축구단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운영 주체가 삼성전자에서 삼성그룹 계열 광고대행사인 제일기획으로 바뀐다.
제일기획은 2014년 3월 19일 경영 위원회에서 수원 삼성을 인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2014년 4월 1일자로 제일기획 소속이 되며, 삼성전자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후원사로 남는다. 관련 기사[19]
3. 기록
3.1. 우승 기록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K리그에 소속된 구단들 중, '''가장 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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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클럽 기록
3.2.1. 득점
3.2.2. 승리
3.2.3. 기타
- 통산 최다 득점승: vs 사운더스 SC 18:0 승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수원종합운동장, 2001년 11월 24일)
- 리그 최다 득점승: vs 전남 드래곤즈 7:3 승 (광양축구전용구장, 2000년 11월 13일)
- 리그 최다 실점패
- vs 부천 SK 1:5 패 (수원종합운동장, 2000년 5월 14일)
- vs 전북 현대 모터스 1:5 패 (수원월드컵경기장, 2010년 11월 7일)
- vs 포항 스틸러스 0:5 패 (포항스틸야드, 2012년 7월 1일)
- 연속 승: 11경기 (2008년 3월 19일 ~ 7월 5일, 정규리그)
- 연속 무승부: 5경기 (2012년 10월 28일 ~ 11월 21일, 정규리그 연무기록과 동일)
- 연속 패: 6경기 (2010년 3월 28일 ~ 5월 1일, 정규리그 연패기록과 동일)
- 연속 무패: 19경기 (2008년 3월 9일 ~ 6월 28일, 정규리그+컵대회)
- 연속 무승: 13경기 (2006년 4월 23일 ~ 7월 15일, 정규리그+컵대회)
- 연속 득점: 26경기 (2011년 6월 29일 ~ 2012년 4월 14일, 정규리그+컵대회)
- 연속 무득점: 4경기 (2004년 8월 4일 ~ 8월 14일, 컵대회)
- 연속 실점: 20경기 (2000년 4월 9일 ~ 7월 23일, 컵대회+정규리그)
- 연속 무실점: 7경기 (2008년 3월 19일 ~ 4월 20일, 정규리그+컵대회)
- 통산 연속 득점: 26경기 (2011년 6월 29일 ~ 2012년 4월 14일)
- 홈 연속 득점: 30경기 (2010년 10월 9일 ~ 2012년 6월 27일, 정규리그+컵대회)[34]
- 홈 경기 최다 승률: 458경기 65%# (리그 1위)
- 해트트릭: 22회 (2017년 기준)
- 도움 해트트릭: 9회 (2017년 기준)
- 한경기 최다 관중: 45,192명 (vs FC 서울, 2012년 4월 1일)
- 한시즌 최다 관중: 2007년 20경기 46만 4957명[35]
- 최단기간 400만 관중: 2007년 401만 9867명 (234경기)
- 최단기간 500만 관중: 2010년
- 단일연고 최초 600만 관중: 2012년 11월 11일
- 단일연고 최초 700만 관중: 2016년 4월 13일
3.3. 개인 기록
- 최다 출장
- 최다 득점
- 최다 도움: 염기훈 (116)
- 최다 무실점: 이운재 (117경기)
- 최연소 출장: 신영록 (만 16세 7개월)
- 최연소 득점: 고종수 (만 18세 3일)
- 한경기 최다 득점
- 시즌 최다 득점: 29득점 (1999년 샤샤, 2001년 산드로)
- 최단기간 30득점: 조나탄 (11개월)
- 연속 득점: 조나탄 (7경기 8골, 2016년 9월 10일 ~ 10월 30일)
- 연속 도움 (4경기)
- 연속 공격포인트: 염기훈 (10경기 6골 8도움, 2015 시즌)
- 연속 무실점: 이운재 (7경기, 2008년 3월 19일 ~ 4월 20일)
4. 타 구단과의 관계
K리그를 대표하는 인기 구단답게 수원과 라이벌로 엮인 구단이 많다.
4.1. FC 서울 - 슈퍼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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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안양 LG 치타스'''와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며 이 두 팀이 붙는 경기는 '지지대 더비' 혹은 '1번 국도 더비' 등으로 불릴 정로로 유명했으며 당시 그랑블루는 안양과 라이벌 시절에 치토스[36] 를 미트스핀하기도 했다. 그 유명한 '오늘은 치토스 먹는 날'.
마지막 안양전으로, 나드손의 3분의 기적으로 유명하다. 조광래의 씁쓸한 표정이 일품... 이 당시 수원 소속이었던 에닝요는 볼을 안양 벤치에다가 뻥 차는 등...
두 팀을 라이벌로 엮는 움직임은 이장수 시절(2005~2006)부터 있었다. 둘 다 대기업 구단으로 그 당시 한창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었고, 2006년 삼성 하우젠컵에서 서울의 히칼도가 수원 상대로 골을 놓고 수원 서포터즈 앞으로 달려가는 셀레브레이션을해, 물병 수십개가 경기장에 날아드는 사건이 있기도 했다. 또한 수원은 2005년에는 크로아티아 통곡의 장벽 마토를 주축으로 김남일과 송종국, 2006년에는 이관우, '''백지훈'''[37] 등을 연달아 영입하며 한국의 레알마드리드 '''레알 수원'''으로 불렸고, 서울은 1998-99 트로이카 이후 당시 한국 축구계 최고 스타로 떠오른 신예 박주영에 김은중, 정조국 같은 화력한 공격진을 보유하고 있었다. 화룡점정으로 안양 LG 시절 라이벌리가 있고, 서로 연고지가 가까우며 그곳이 천만도시[38] 서울과 기초지방자치단체 최다인구이자 경기도 제1도시인 수원이니 이보다 좋은 소재가 없었다.
연고이전 초기라 특히나 길길이 날뛰었던 수원 서포터즈는 안양 LG 치타스와 FC 서울은 더 이상 라이벌이 아니라는 주장을 고수했지만[39] GS그룹이 LG에서 갈라지면서 받아 왔을뿐 같은 구단인건 맞다. 그렇다고는 해도 FC 서울과의 라이벌 관계는 단순히 FC 서울의 전신이 안양 LG 치타스라고 해서 그때부터 형성된 관계가 이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거기에 이 둘을 엮지 않기에는 사건이 너무 많았다. 또 서울의 인구수를 등에 업고 세를 빠르게 불린 FC 서울 서포터즈 수호신 내부에 급격하게 울트라스 그룹이 나타나게 된 요인에는 거대 서포터즈로 서울 저격에 앞장선 수원 서포터즈 그랑블루의 극렬한 비난으로 인한 앙금도 있었다.
그리고 2007년 세뇰 귀네슈 감독이 FC 서울에 부임하면서 두 팀은 더욱 다사다난해진다. 부임 초기 귀네슈 감독은 부임 이후 공격 축구를 표방하며 초반 무패 가도를 달렸는데, 유럽식 언플에 익숙한 감독답게 다른 K리그 팀들이 지나치게 수비 지향적인 축구를 한다고 거침없는 쓴소리를 했다. 이런 발언에 대해 국내 감독들 가운데 이름값이 가장 높았던 수원의 차범근 감독이 '귀네슈 감독은 아직 K리그에 대해 잘 모른다'고 정면으로 맞받아쳤는데, 이러한 설전 이후 벌어진 수원과 서울의 컵대회 대결에서 수원은 박주영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며 4:1로 참패를 당하며 굴욕을 맛봤지만, 얼마 뒤 리그 경기에서는 상암 5만 관중 앞에서 신인 하태균의 골로 1:0의 승리를 거두며 설욕을 했다.
여기에 R리그 경기에서 FC 서울 팬이 안정환에게 욕설을 퍼부은 사건이 터진다. 2007년을 기점으로 서포터즈의 의견이야 어찌되었든 이 둘은 만나면 치고받는 라이벌이 되었다. 물론 강성 팬덤에선 계속 라이벌 아니라고 주장해서 웹툰작가 샤다라빠가 한때 이 두 팀의 관계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서로를 라이벌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라이벌 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프로는 돈벌어 먹고살아야 프로고, 이 두 팀의 스토리는 강성 팬덤 바람대로 묻어버리기엔 너무 장사가 잘 되었고 이야깃거리도 많았다.
유료 관중을 정확히 체크하던 시절이 아니라곤 하지만 5만 관중 채울 수 있는 경기를 무시할 수 있을리가 없다. 2008년 두팀간의 경기를 좀 더 띄우고, 브랜드화 시키기 위해 수원 프런트가 제안하고, 서울 프런트가 승낙해 슈퍼매치라는 명칭을 만들기에 이르렀고 이 역시 초창기에는 강성 팬덤의 저항이 꽤 있었으나 강산이 이미 변한 작금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브랜드화해 정착했고 양 팀은 대놓고 라이벌이자 K리그 관계자들이 가장 기대하는 리그 최고의 흥행 매치다. 일반 대중들이 보기엔 누가봐도 라이벌 구도였고 심지어 FIFA에서도 공식 웹 사이트에 Asia's Top Derby라는 제목으로 특집 기사를 냈을 정도로 자타가 공인하는 K리그 대표 라이벌 더비로 인정받고 있다.
두 팀이 세운 관중 기록이 꽤 많다. 2007년 4월 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경기에서 무려 '''"55,397"'''명의 관중이 입장, 결승전도 아닌 정규리그 도중에 이 정도 관중이 들어선 것은 이례적인 일로 우리나라 프로스포츠 사상 '''역대 관중 동원 기록 3위'''으로 남아있다.
2011년 10월 3일 개천절에 빅버드에서 벌어진 경기에서는 44,537명의 관중이 입장해, '''월드컵 경기장 최초의 만석''' 기록을 세웠다. 약 6개월 뒤인 2012년 4월 1일에 펼쳐진 경기에서는 45,192명의 관중 수를 기록해 구단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을 경신했다.
흥미로운 점은 수원에 윤성효 감독이 재임한 이후로 한쪽이 압도하는 경향이 쭉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2010년 차범근 감독이 사퇴한 뒤 후임으로 들어온 윤성효 감독 시기에는 아무리 팀 상태가 안 좋아도 서울만큼은 귀신같이 잡아내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임 차범근 감독은 2008년 서울을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으나, 크게 지는 경기도 있었던 반면 윤성효는 서울팬들이 무승부면 감지덕지하며 가슴을 쓸어내릴 정도였다. 유효 슈팅, 점유율 다 밀려도 이기고, 서울 수비수가 괴상한 실책을 하거나, 공을 흘리거나 해서 황당하게 들어가는 골도 많아서 윤성효가 법력 쓴다는 말도 나왔고, 윤성효 얼굴을 가져다 붙인 서울 잡는 부적까지 나왔다.[40]
그런데 윤성효 감독이 물러나고 서정원 감독이 부임한 이후에는 서울 감독이 누구든 서울의 우세가 이어지고 있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시즌 전적이 서울에게 앞선 적이 없다. 2013년에는 1승 1무 2패, 2014년에는 1승 3패, 2015년에는 1승 1무 2패, 2016년에는 2무 1패(FA컵 포함 1승 2무 2패), 2017년 2무 2패, 2018년 1무 2패로 열세다. 윤성효 수원에겐 하도 지기만 해서 버스 막기 경험한 적도 있는 최용수 감독이 윤성효 감독이 물러나니 갑자기 전적 우위를 점하고, 서울을 완전히 말아먹고 떠난 황선홍(3승 3무)과 무력했던 감독 대행 이을용(2승)조차 수원 상대론 불패였다.
수원 팬덤이 상당히 싫어하는 윤성효 감독이지만 군말없이 인정하는 몇 안 되는 부분이 대 서울 전적 절대우세이며, 후임 서정원 감독에게 많이 아쉬워 했던 부분이다. 2016 FA컵 '슈퍼 파이널'에서 1승 1패를 주고받은 다음 승부차기에서 승리해 FA컵 우승을 차지하는 짜릿한 반전이 없었다면 수원팬들의 아쉬움과 분노는 지금보다 훨씬 컸을 것이다.
K리그는 판이 좁고 재정상태 열악한 시민구단이 많다 보니 라이벌이라곤 해도 선수 이적은 활발한 경우가 많다. 슈퍼매치와 함께 서울의 양대 더비로 칭해지는 경인 더비의 인천이 그렇다. 하지만 이 둘은 운영비 2, 3위에 속하는 대기업 구단들이라 아쉬울 게 없는 덕에 이적이 드문 편이다. 대신 그 드문 이적이 성사되면 불꽃 튀는 스토리 라인이 탄생한다.
2017년 수원에서 서울로 이적한 이상호는 이듬해 음주운전으로 인한 임의탈퇴로 불명예스럽게 서울을 떠났으나 최소한 슈퍼매치에선 흥미로운 스토리 라인을 만들었다. 수원 시절 슈퍼매치에 강했으며, SNS에서도 "북패 짜식들 라이벌이 아니다" 같은 글을 자주 올리며 FC 서울 디스의 선봉장으로 유명했고 알 샤르자 SC에서 임대 복귀 이후 인터뷰에서 FC 서울에는 절대 안가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오래 남을 거라고 호언장담했었던 선수가 서울로 적을 옮기고, 과거 SNS 글은 철없던 시절에 올린 글이라며 서울 팬들에게 사과하는 모습은 수원 팬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2017년 8월 12일 17시즌 3번째 슈퍼매치이자 FC 서울 이적후 처음 가진 빅버드를 원정에서 경기가 FC 서울의 승리로 끝나자 관중석에 인사하러 가자 격분한 몇몇 수원 삼성 블루윙즈 팬이 물병을 집어던지는 사건도 있었다.
2018 시즌을 앞두고는 앞의 건보다 훨씬 더 큰 파급력을 지닌 메가톤급 이적이 성사된다. K리그 역사상 최고의 외인 공격수인 데얀 다미아노비치가 만나는 외국인마다 마찰을 일으킨 황선홍 감독과의 대립으로 수원으로 이적한 것이다! 게다가 2018년 8월 15일, '''세 번째 슈퍼매치에서 득점에도 성공하며 양 팀간 라이벌리와 스토리 라인에 또 다른 불씨를 지피다 못해 폭파시켰다.
2018 시즌은 무능한 프런트와 고집만 센 감독의 앙상블로 끝없는 부진 끝에 강등권에 떨어진 서울 최악의 시즌으로 2012년 스플릿 제도 시행이후 사상 첫 슈퍼매치 조기종료[41] 를 맞이했으나 수원은 팀도 아니었던 18시즌 서울에게 승점 7점을 제공해 6점을 제공한 포항과 함께 서울이 다이렉트 강등을 면하고,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기사회생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는 수원팬들에겐 이가 갈리고, 복장이 터지는 일이었고 서울팬들이 그 안 좋은 성적에도 수원팬들을 놀릴 수 있었던 이유다.
2019년에도 FC 서울 상대 무승은 계속되고 있다. 5월 5일 진행된 홈 슈퍼매치에서 데얀의 선제골이 터졌고 10년도 더 전인 U-20 대표팀 이후 PK를 실축한 적이 없었던 박주영의 PK를 노동건이 끊어내며 드디어 무승 탈출하나 싶었지만, 종료 직전 그 노동건이 고요한에게 한 태클이 정통으로 다리에 걸리는 바람에 또 한 번의 페널티킥이 선언됐고 이걸 그 박주영이 성공시키며 승리가 날아가버렸다. 이것만으로도 수원 팬들 입장에선 분노가 치밀어오를 지경인데, 6월 16일 서울 원정 슈퍼매치에선 4골을 실점하고 대패하는 대형사고가 터져버렸다. 서포팅에 대한 자부심이 큰 수원 팬들은 3번째 실점 이후 집단으로 경기장에서 퇴장해버렸다. 이 날을 기점으로 언제나 수원이 앞섰던 리그+리그컵 기준 상대 전적이 역전되면서 '''선배들이 이뤄놓은 업적 너희가 다 망쳤다''', '''우린 이제 쟤네 절대 못 이긴다''' 등 부정적 의견이 수블미 같은 팬 커뮤니티에서 난무했다. 10월 6일 3번째이자 수원의 파이널 B행으로 인한 2019년 마지막 슈퍼매치마저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일관하다 1-2로 패하며 슈퍼매치 무승 기록을 16경기로 이어갔다. 이 패배로 역대 슈퍼매치 전적마저 동률이 되었다.
2020년엔 2019년 어린이날 슈퍼매치보다 더한 무승 탈출의 기회가 찾아왔다. 코로나19로 인한 단축 시즌의 여파로 7월이 돼서야 서울을 처음 만났는데, 홈에서 펼쳐진 이 경기에서 '''전반전을 3:1 리드로 마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수비 불안이 18시즌 이상이었던 서울의 약점을 제대로 파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후반전 서울이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릴레이골[42] 을 넣어버리며 3 대 3으로 '''또''' 비겼다. 이로써 '''수원의 리그 무승이 어느덧 1900일을 넘어섰다.'''
그러나 수원의 리그 슈퍼매치 무승이 2000일이 거의 다 되어가던 2020년 9월 26일 3:1로 승리를 거두며 드디어 리그 무승행진을 끊어냈다. 수원 서포터즈들은 2015년 서울의 굴욕적 5:1 패배를 두고 조롱을 하던 5eou1에 이은 3eou1, S3ou1 등을 사용해 조롱을 했다.
수원 서포터즈의 서울 전용 디스곡으로 패륜송이 있다.[43] 원곡이 굉장히 흥겨운 곡이라 호응도도 좋고, 선수들도 팬들과 행사하는 자리에선 부르곤 했다.(대표적으로 이관우) 서울 팬덤은 2015년까진 이 패륜송에 욕설이나 신경질 적인 반응을 많이 보였으나 수원의 서울전 열세가 표면화된 2016년부터는 패륜송에 맞춰서 강마에가 되어 지휘를 하거나, 목소리 작다며 같이 불러주곤 한다(...)
4.2. 전북 현대 모터스 - 공성전
우선 수원과 전북과의 악연의 한 축을 이루는 것이 바로 조재진이다. 조재진은 수원 출신이긴 했지만 2004년 5월 23일 FC 서울과의 경기에서 상대 선수와 친목을 도모했다는 이유, 수원에서 나갈 때 뒤끝이 안좋았다는 등의 루머로 인하여 여러가지로 수원 팬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결국 2004년을 끝으로 조재진은 J리그로 갔다. 그러던 중 조재진은 2008년 다시 J리그에서 전북 현대로 이적했고, 5월 5일 경기에서 수원 선수가 골을 넣고, 전북 서포터즈 앞에서 도발적인 세리머니를 하자, 이에 분노한 조재진이 동점골을 작렬시키고 수원 서포터에게 주먹감자를 먹이는 세리머니를 한다. 이에 격앙된 수원 서포터들은 다음 번 홈경기에서 조재진과 루머가 있었던 여가수[44] 의 이름을 부르며 조재진을 도발했지만 조재진은 1골 1어시를 작렬시키며 팀을 5-2 승리로 이끈다.[45]
또한 차범근의 악연들이 전북과의 관계를 이루는 축이 되었다. 최강희는 울산 현대에서 뛰던 현역 말기에 감독으로 부임한 차범근의 영향으로 은퇴를 한다. 고참 선수와 젊은 신임 감독의 흔한 힘겨루기 중에 하나로도 볼 수 있지만, 어쨌든 최강희는 차범근에게 악감정을 갖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며 빠른 복귀를 결정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수원 소속이었던 선수가 전북에 가서 유난히 잘되는 경우가 많았다. 앞서 말한 조재진은 J리그에서 성장해서 전북으로 온 경우이긴하지만, 수원에서는 꽃을 피우지 못하던 에닝요, 루이스 등의 선수들의 포텐이 전북에서 터지는 경우도 많았으며 특히 루이스의 경우는 차범근 감독도 잡고 싶었지만 계약 문제로 잡지 못하고 전북이 영입한 결과... 유독 이런 선수들이 수원에 골을 잘 넣는 경우가 많아 많은 수원 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이 시기부터 전북이 모기업의 푸시를 받으며 만년 하위권에서 K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강팀으로 올라온 것도 한몫했다.
최강희의 전북 감독 부임부터 윤성효 경질까지는 수원 대 전북 전적이 심각하게 안습했었는데 2013년, 서정원 감독 부임 이후 첫 해에 3승 1무를 찍으며 전북에게 매우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2014년에도 1승 1무 1패로 팽팽한 전적을 기록했지만 2015년에는 1무 2패로 탈탈 털렸지만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염기훈의 프리킥 선제골과 카이오의 역전골로 승리했다. 2016 시즌에는 3경기에서 1무 2패의 열세.
원래 사이가 좋진 않았지만 에두 가계약 논란(에두 문서 참조)과 전북 현대 모터스 심판매수 사건 이후로는 관계가 더 악화되었다. 애초에 공공의 적 이미지가 있었던 FC 서울보단 나은 관계였지만 이 사건 이후로 전북 현대가 떠오르는 공공의 적이 되면서 오히려 락사커같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전북에 대한 비판으로 수원 팬들과 서울 팬들이 대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46] 그리고 6월 15일 전북과의 원정 경기에서 전북 측 경호원과의 충돌#, 동시에 전북 서포터들의 내로남불식 비난[47] , 9월 1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양측 서포터즈들의 충돌과 이동국-이종성 건 등으로 인해 더욱 악화되었다. 이미 수원 서포터즈 측에서도 패륜송에 가사만 바꾼 매수송이 나오기까지 하는 등 이젠 두 팀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FC 서울만큼 증오의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48]
4.3. 대전 하나 시티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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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에 1996년 수원이 9번째, 1997년에 대전이 10번째로 가입함으로써 서로 신생 구단이라는 공통점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IMF의 영향으로 대전의 컨소시엄을 이루었던 기업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계룡건설이 부도가 나고 나머지 기업들 또한 어려워지면서 구단의 재정도 많이 어려워졌고, 이는 상대적으로 강력한 모기업을 갖고 있었던 수원과 대비가 되었다. 그러던 중 당시 PC통신에서 수원 팬들이 대전 팬들의 어그로를 끄는 광역 도발들을 시전했고(이는 당시 1997년 수원과 대전의 모 경기에서 대전 선수의 도발성 골 세리머니가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대전과의 관계 악화의 시발점이었다. 압도적인 전력 차가 존재했기 때문에 대전이 수원을 이기기는 쉽지 않았고 수원은 대전에 대해 절대적인 우세를 점해왔다. 특히 '대전 킬러'로 불렸던 산드로, 고종수와 데니스의 존재는 대전이 버텨내기 쉽지 않았다. 물론 대전에도 김은중, 이관우같은 선수들이 존재하긴 했지만.
그러나 무엇보다도 양 측 서포터 간의 폭력 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난 것이 특이할 만한 점이다. 특히 2001년 6월 24일 수원에서 열린 경기가 시발점이었다. 2-2였던 후반 막판 주심이 착각 끝에 수원 수비수 졸리에게 레드 카드를 뽑았는데, 졸리가 이를 무시하고 스크린 플레이에 참가했고 고종수는 왼발 프리킥으로 결승골을 터뜨린다. 결국 대전 선수단은 심판에게 강력히 항의하고 대전 서포터들이 경기장에 난입하면서 경기가 일시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후 대전 서포터즈는 이 경기의 주심과 프로축구연맹 총재를 현상 수배하는 전단을 돌렸고 주심이 이들을 고소하는 사태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이후에 일어난 일들이 화룡점정을 찍게 된다. 한 달 후인 7월 28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대전 서포터들이 쇠파이프등을 사용해 폭력을 행사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사실 이날 발단은 수원 서포터들이 원정 서포터의 응원석을 점거한 데서 시작되었다. 수원 측은 대전 서포터가 지난 달에 난입한 일에 대해 사과를 받기로 했으나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원정 서포터 대상 입장료 할인, 지정 응원석 등 편의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이를 통보받고 도착한 대전 서포터들은 수원 측과 멱살잡이를 벌이고 쇠파이프를 휘둘러 의자를 부수었으며 경기 후에는 주차되어 있던 차량 등을 파손하는 등 30여 분간 난동을 부리다가 결국 현장에서 체포되어 양 측 서포터즈 회장이 수원중부경찰서로 연행되었으나 대전 구단이 피해를 보상하는 조건으로 훈방되는 등 K리그의 흑역사로 남아 있는 사건을 만들었다.
그 이후로도 위에 서술되어 있는 사건의 뺨을 칠 정도로 과격한 마찰이 지속적으로 일어났으며 수원 서포터들은 대전 원정에서만큼은 긴장 아닌 긴장을 하고 떠나야만 했다. K리그/더비 매치 문서에도 서술되어 있는 관계이기도 하지만 거기에 서술되어 있는 정도로 평화로운 더비가 아니었다... 축구 수도 더비라는 것은 그나마 폭력적인 마찰이 줄어들었던 최근까지의 일이었고 2000년대 초중반의 이 두 팀의 관계는 적 그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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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2000년대 중반 들어서 대전 시티즌이 연패를 당하는 등의 분위기가 안좋은 상황 속에서 항상 수원에게 승리하여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일이 종종 벌어졌는데, 대표적인 것이 '''이다해의 저주'''다. 2008년 7월 15일 대전 시티즌 홈경기에서 이다해가 시축자로 나섰는데, 당시 대전은 좀처럼 부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수원 삼성은 18경기 연속 무패와 리그 11연승을 달리고 있었다.[49] 그러나 이날 경기에서 대전은 수원을 1:0으로 꺾으며 수원의 연승을 저지하며 화제가 되기도 하였으며, 2012년에도 대전이 승리 한번 거두지 못하고 있다가 리그 1위인 수원을 상대로 홈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시즌 첫승을 거두기도 하였다.
대전이 K리그2로 강등된 이후 서로 만날 일이 희박해졌다. 이후의 2000년대 후반의 일은 K리그/더비 매치를 참조할 것.
대전이 놀라운 성적으로 K리그 챌린지를 씹어먹고 2015 K리그 클래식에 합류하면서 수원과 다시 만나게 됐으며, 대전은 2015 시즌에 극도로 부진하고 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전반기 유일한 1승은 수원에게서 따냈다.'''
하지만 대전이 2015년 K리그 클래식에서 12위로 강등되고 2019년 K리그1 승격에 실패하면서 다시 만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2018년에는 김호가 대전 사장으로 오게 되고, 대전 출신 인사들이 수원 출신들로만 구성되면서 대전과 수원의 사이는 더욱 악화될 전망.[50]
대전은 2020년 하나금융그룹에 인수되어 기업구단으로 변모했는데 대전의 강등과 여러 사건으로 인해 약해진 라이벌리가 다시 부활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4.4. 성남 FC - 마계대전
2000년대에는 확실히 서로가 의식한 라이벌리가 있었지만, 일화가 문선명의 사망 이후 시민구단으로 변경되면서 일화 시절의 경쟁 의식은 희석된 상태다.
4.5. 포항 스틸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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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챔피언 결정전 승부차기에서 김병지의 슛을 막아내고 포효하는 이운재.
포항과는 중요한 길목에서 많이 만났다. 1996년 FA컵 결승에서는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포항이 수원을 꺾고 초대 우승을 차지했으며 1998년 FA컵 8강에서도 포항이 수원을 꺾고 4강에 진출했다. 2002년 FA컵 결승에서는 수원이 포항을 꺾고 첫 우승을 차지했다.
2004년 챔피언 결정전이 유명하다. 당시 전기 리그 우승팀과 후기 리그 우승팀 간에 연말에 결전을 벌였는데, 전자가 포항, 후자가 수원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당시 이 두 팀에는 당시 국가대표 골키퍼인 김병지와 이운재가 최후방을 지키고 있었다. 실제 경기도 이들 키퍼들의 싸움이 되었고, 포항과 수원에서 벌어진 1~2차전 모두 무승부로 끝났다. 2차전이 끝난 직후, 챔피언을 결정하기 위해 바로 연장전에 들어갔다. 하지만 연장전에도 결판이 나지 않았고, 결국 승부차기까지 가게 되었다. 그러나 승부차기 조차도 팽팽하게 진행되었고, 포항의 마지막 키커로 나선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김병지였다. 하지만 김병지의 슛은 이운재에게 막혔고, 키퍼들의 싸움이 되었던 2004년 K리그 챔피언 결정전은 이운재의 승리로 끝났다.
2006년 플레이오프에서도 수원은 포항을 꺾고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으며 2007년 플레이오프에서는 반대로 포항이 리그 2위 수원을 꺾고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다.
그 이후 2014년까지 포항 원정에서 5-0, 3-0 패배등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2014년 시즌 첫 포항 원정 경기에서 2-1로 역전패 당했지만 홈에서 4-1 승리, 2-1 승리등 홈 경기에서 완전히 압도했고 2014년 마지막 포항 원정이자 K리그 마지막 라운드에서 산토스와 정대세의 골로 징크스를 깼다.
2015년 전적은 2승 1무 1패로 수원이 우세한 전적을 기록했다.
2016년부터는 수원과 포항 양측 팬덤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서로를 형제(...)라 칭하고 있다. 갈수록 줄어드는 모기업의 지원과 선수 유출, 리그에서의 부진 등 동병상련을 겪고 있기 때문. 심지어 2016년 상대 전적은 4전 4무다! 수원시와 포항시가 자매결연을 맺은 것은 덤.[51]
2017년 현재 전적(2017.10.15. 기준)은 3전 2승 1무로 수원이 우세하다. 그리고 포항이 하위 스플릿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올 시즌은 이대로 마무리 되었다.[52]
2019년에는 라이벌 의식이 점차 희미해지고 오히려 순위를 같이 병행하며 하위 스플릿을 굳건히 지켜나갔다. 하지만 포항이 반등에 성공하면서 4위까지 올라가고, 수원은 FA컵 우승을 위해 리그를 포기하면서 순위표를 보는 재미는 줄어들게 되었다. 전적은 FA컵 포함 2승 2패.
2020년에 구단 공식 SNS에서 코로나19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차원에서 다음 릴레이 대상으로 포항 스틸러스를 '''형제 구단'''으로 지목했다.
4.6. 울산 현대
수원의 리그 참가전부터 울산에서 견제가 심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두 모기업인 삼성과 현대의 라이벌 의식 때문에 이는 수원이 리그 참가 이후에도 모기업의 영향으로 라이벌로 묶이곤 했다.
더군다나 수원은 1996년 리그 참가 당시 신생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챔피언 결정전에 오르는 저력을 과시한다. 당시 챔피언 결정전의 상대가 바로 울산. 수원은 울산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서 조현두의 골로 1-0으로 승리를 거두며 우승에 한발짝 다가서게 된다. 이대로 수원이 우승하면 신생구단이 참가하자마자 바로 우승하는 엄청난 일이 이루어질 수 있었으나... 수원은 홈에서 열린 챔피언 결정전 2차전에서 3-1로 패하며 울산에게 K리그 우승컵을 안겨주게 된다.[53] 2차전은 레드 카드가 다섯 장이나 나올 정도로 굉장히 거친 경기였으며, 당시 윤성효는 선수 생활에서 처음으로 레드 카드를 받고 퇴장당했다. 이후 수원은 1998년 챔피언 결정전에서 울산을 꺾고 우승하며 설욕에 성공한다. 한편 1996년 당시 울산 소속으로 우승을 경험했던 신홍기는 1997년 수원으로 이적, 1998년 수원에서 또다시 K리그 우승을 경험하는 흔치 않은 커리어를 쌓게 된다.[54]
2000년대 들어서도 잊을만하면 양 팀은 충돌했다. 대표적으로 2003년 빅버드에서 열렸던 수원-울산 경기. 이 경기에서 울산 서포터들은 '서포터' '김호 감독' '삼류 심판' 등의 팻말을 붙여 닭을 투척#했고, 수원의 한 서포터는 경기장에 난입하여 울산의 김현석에게 폭행을 가하는 등 버라이어티한 모습이 펼쳐졌다. 자세한 건 포스팅 참조##
이천수가 '삽질개천수'라는 팻말을 보고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던 것도 수원 서포터와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 이후 이천수는 2008년 수원에 임대 형식으로 입단하게 되지만 제대로 된 활약 한번 못했고 시즌 말미에 사건을 터트리며 임의탈퇴되고 만다.
4.7. 인천 유나이티드 - 수인선 더비
'''K리그 응원 최고의 팬들과의 만남'''
수인선이라는 열차와 함께 수도권 라이벌이지만 전력 차이가 꽤 크며, 오히려 인천 서포터즈에서 라이벌 의식을 가지기도 한다.
2012년 3월 12일 인천 숭의아레나 개장 경기가 두 팀이 붙었는데 엄청난 열기를 뿜어냈다. 인천에서 활약했던 2005 비상의 주역인 몬테네그로 폭격기인 라돈치치와 한 때 수원 삼성의 주장이었던 김남일로 인해 라이벌 의식이 생겼다.
어렵게 경기장을 찾은 인천 팬들 입장에서는 홈 팀 인천 유나이티드가 개장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기를 기대했으나 원정 팀 수원은 인천 팬들의 바람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것도 찬물을 끼얹은 주인공은 인천에서 K리그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2005년 인천 돌풍의 주역이기도 했던 공격수 라돈치치였다.
라돈치치는 이날 최전방 공격수로 선발 출장해 90분 풀타임을 뛰었는데 지난 개막전에서 골을 넣지 못했던 라돈치치는 전반 29분 만에 오범석의 크로스를 받아 곧바로 논스톱으로 왼발 슈팅으로 연결시켜 선제골을 넣으며 인천축구전용경기장 개장 첫 골을 성공시키더니 이어 후반 33분에도 페널티킥을 얻어내 골을 성공시킨 라돈치치는 단숨에 2골로 개막전 무득점의 한을 풀었다.
라돈치치의 맹활약에 아쉬워했던 사람들은 아무래도 인천 팬과 인천 서포터즈였는데 물론 라돈치치가 인천에서 마지막으로 활약했던 것이 2008년이었으니 4년의 세월이 흘렀고, 성남 일화를 거쳐 수원 삼성으로 이적해서 조금은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2005년부터 네 시즌을 인천에서 활약했던 만큼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남달랐는데 그런 라돈치치가 인천 홈 경기장 개장 경기에서 2골을 뽑아냈으니 당연히 기분도 묘했다.
이날 라돈치치와 더불어 친정 팀을 상대했던 선수가 있었으니 '진공청소기' 김남일이었다. 수원 삼성에서 뛰다 일본 J리그, 러시아 리그를 거쳐 고향 팀 인천 유나이티드에 올 시즌부터 뛴 김남일은 홈 개막전을 공교롭게 친정 팀 수원 삼성과의 맞대결로 맞이하게 돼 역시 남다른 기분을 갖고 이번 경기에 임했다. 체력 문제로 후반에 교체 출전한 김남일은 중원에서 이따금씩 공격진으로 날카롭게 찔러주는 패스 플레이로 인상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박수를 받았고 인천 팬과 인천 서포터즈는 김남일의 존재감만으로도 무게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런 김남일에게 수원 삼성 팬들은 아쉬움을 쏟아냈다. 김남일이 수원 소속이던 당시 부상 치료차 일본으로 갔는데 거기서 일본팀과 계약을 진행하면서 시즌 종료 후 J리그로 갔기 때문이다. 그 이후 수원팬들 내에서 김남일의 별명은 김배신이 됐으며 김남일이 경기에 출전하지 않은 전반부터 수원 팬들은 '배신하는 김남일'을 외쳤고, 후반 김남일이 투입돼 볼을 잡을 때마다 야유를 쏟아내면서 '배신! 배신! 김남일!'을 더 크게 외쳤다. 이에 아랑곳 않고 경기에 집중한 김남일은 경기가 끝난 뒤 수원 서포터가 있는 곳에 홀로 가서 90도로 인사하기도 했다. 옛 친정 팀 팬들의 관심에 감사 인사를 한 것이다. 이에 야유를 보인 팬도 있었지만 격려를 하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
이후 수원 삼성은 절대적 전적 우세를 이어갔지만 2019년에 마침내 이변이 발생했다. 수원 삼성은 인천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2019년 8월 10일 이전 통산 26승 14무 5패라는 절대적인 상대 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최근 전적 역시 압도적이다. 수원 삼성은 2013년 12월 펼쳐진 경기에서 1-2 패배 이후 17경기 연속(10승 7무)으로 단 한 번도 인천에 패하지 않았다. 빅버드에서의 성적은 더욱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09년 펼쳐진 양 팀의 대결에서 1-2 패배 이후 10년 동안 단 한 번도 빅버드에서 인천 유나이티드에 승리를 내주지 않았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실력차다. 하지만 2019년 8월 10일 수원 빅버드에서 유상철 감독이 이끄는 인천 유나이티드에 무려 10년만의 패배라는 굴욕을 당했다. 이 패배로 파이널 라운드 B로 추락했고 파이널 라운드 B에서도 인천 원정에서도 졸전 끝에 1 대 1로 비겼다.
거기에 2020년 8월 22일 인천이 홈에서 승리를 거두며 6년만에 인천 원정에서 패배를 당했다.
4.8. 안양 LG 치타스, FC 안양 - 지지대 더비 & 오리지널 클라시코
지지대 더비 참조.
4.9. 수원 FC - 수원 더비
K리그에 존재하는 연고 라이벌 중 하나다. 수원 FC가 2013년에 K리그 챌린지에 진출하게 되면서 최초이자 유일한 연고 더비가 성사될 수 있었지만, 2015년 서울 이랜드가 창단하면서 현재는 유이한 연고 더비가 되었다[55] . 2016년, 수원 FC가 K리그1으로 승격하면서 K리그 최초의 로컬 더비는 수원의 몫이 됐다. 하지만 당시 수원 삼성과 수원 FC는 전력 차이가 꽤나 있었기 때문에 팬들은 서로를 아직 라이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수원 FC가 실업팀으로 내셔널리그 소속으로 있던 시기에는 FA컵에서 3차례[56] 만났었지만 수원 FC가 프로화하고 K리그에 참가한 이후에는 2015년까지 서로 만난 적이 없었다. 둘이 만나려면 수원 삼성이 K리그 챌린지로 강등당하거나 수원 FC가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해야 했는데, 2015년에 수원 FC가 시시 곤잘레스를 영입하면서 선두권 싸움을 하는 만큼 수원 더비가 성사될 가능성이 생겼고, 결국 부산 아이파크와의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1-0 승리, 2차전 2-0으로 승리하여 '''수원 FC가 승격. K리그 클래식 최초의 지역 더비가 확정되었다.'''
수원 FC의 프로화 이전까지 둘 간에 상대 전적은 수원 삼성이 3승 1무[57] 를 거두었다.
지금까지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수원 FC 두 팀에서 둘 다 뛰어본 선수로는 수원 FC 수석코치를 맡고 있는 조종화, 지금은 은퇴한 이상기, 선문대를 졸업하고 입단하자마자 수원 삼성에서 수원 FC로 1년간 임대갔었던 김종우와 유주안 등이 있다.
2016년 5월 14일 수원 삼성의 옛 홈 경기장인 수원종합운동장에서 펼쳐진 K리그 첫 로컬 더비에서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2:1로 승리를 거두었다. 이 날 블루윙즈 서포터들은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종합운동장까지 걸어서 원정길을 떠났고 수원 FC의 홈인데도 원정팀인 블루윙즈 서포터들의 함성이 더 크게 들렸다.[58]
시즌 최종 전적은 3승 '''1패'''. 그리고 수원 FC가 강등을 당하면서 FA컵에서도 만날 일이 없게 되었다. 2017 K리그 챌린지에서 수원 FC가 플레이오프권으로 순위를 끌어올리지 못하면서 수원 더비는 다음을 기약하기로(...)
2021년 수원 FC가 K리그1으로 승격하면서 다시 수원 더비가 성사되게 되었다.
5. 시즌별 일람
6. 유소년 시스템
7. 사건/사고
8. 시설 및 장비
8.1. 유니폼
8.2. 경기장
8.3. 클럽하우스
8.4. 재활시설
삼성 트레이닝 센터에서 재활치료를 담당한다.
8.5. 차량
프로선수단 버스는 기아 그랜버드를 사용하고 있고 그 외 유소년이나 기타는 현대 에어로버스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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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캐치프레이즈
10. 기념 로고
- 1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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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주년